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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6

졸업 후기

제목

위기가 기회가 되다. (대입 Y1반 김준수)

3 4 2 2 4 6 (언어 수학(가) 외국어 과탐3)
현역시절 내가 받아든 수능성적표다.
고3시절의 나는 평소에는 지독히 공부하기 싫고, 시험 때에만 어쩔 수 없이 반짝 공부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놀기 좋아하는 고등학생이었다. 
내신 3점대 후반.  수능성적표도 수능 때 미끄러져서 받은 것이 아니고 거의 정확히 나의 성적이 반영된 것이었다. 
어찌어찌하면 인서울 하위권 대학에 겨우 붙을 수 있는 정도의 점수.
싫었다.
나의 인생이 그냥 적당히, 적당한 대학에 맞춰진 채 입학하고, 적당히 졸업하고, 그저 그런 회사에 취직하여,
그저 그렇게 적당히 재단된다는 것이 싫었다.  어머니는 재수를 해도 성적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고,
재수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 점수에 맞춰서 진학하기를 원하셨다. 
그 보다는 고등학교 시절의 내 모습을 보니 비전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아버지께서는 나를 믿고 다시 한번 도전해볼 것을 권유해주셨다. 
재수방법은 무조건 기숙학원.
내가 재수 방법으로 기숙학원을 택한 것은 당연히 나도 내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이다.  재수 기간은 무려 9개월이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  아무리 내가 모진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9개월여를 한결 같은 마음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각종 진학 수기를 읽어 봐도 알게 되듯이 정말 의지력 강하고 머리 좋은 수험생도
독학 재수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부침을 겪고 방황하는데, 이미 노는 유전자가 DNA 구석구석에 알뜰히 박혀있는 내가
그것을 이겨낼 가능성은 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내 의지를 그나마 통제해 줄 수 있는 것은 기숙학원 뿐이었다.
이천비상에듀를 선택하다.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이천에 있는 강XXX기숙학원에 등록을 해 주셨다.
그곳은 규모도 크고 일단 성적 우수한 학생이 많이 다니고 인지도가 높은 곳이다. 
내 수능 성적으로는 겨우 맨 끝반(두 과목 등급합5)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내가 다녔던 학원 선생님께서 내가 재수 하기로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바로 옆에 있는 이천비상에듀기숙학원에 친구가 강사로 있으니 한번 알아보라고 추천해주셔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도 두 군데 학원을 모두 상담 다녀와서는 비상에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논리는 강X학원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아 학습분위기는 좋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리는 느슨해질 수 있어서
의지력이 시험 받는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고 아무래도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선생님이 있고,
특히 기숙사에 2인실이 있다는 말에 잠자리에 예민한 나로서는 주저없이 비상에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아니었다.
2월 중순, 기숙학원 정규반에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입소했다. 
일단은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어머니의 잔소리, 부담스런 아버지의 눈빛에서 해방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 전에 제대로 공부해본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숙학원은 재미있을 것이라는 망상까지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입소 후 불과 일주일만에 나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어마어마한 공부량.  내가 고등학교때 했던 공부량보다
기숙학원에서의 일주일간의 학습량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부에 질려버린 나는 재수 선택한 것이 살짝 후회가 되었다.
혹시나 해서 상향지원해 놓은 건국대와 단국대에 추가합격 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때가 나의 첫 번째 고비였다.  사실 기숙학원에 들어온 친구 중 몇몇은 이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주일,
또는 1개월 정도 버티다 퇴소하기도 한다.  나도 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으면 지금 어찌 되었을까 가슴이 서늘해진다.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할 수 없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 공부, 공부
이 어마어마한 학습량은 곧바로 성적에 반영이 되었다. 
워낙 보잘 것 없는 실력이었기 때문이지만 3월 모의고사에서 한층 향상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었다. 
수능 때 표점합 484에서 510점선.  자신감이 생겼다.  한달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수험생활에도 적응이 되고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sky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월, 5월, 모의고사를 치를 때마다 큰 폭은 아니지만
조금씩 성적은 향상되었고 안정적으로 점수가 나오니 더욱 더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다시 위기를 맞다.
하지만 6월 모의평가에서 나는 큰 시련을 맞게 된다.  모두들 중요하다고, 거의 6월 성적이 수능성적이 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오히려 평소 성적보다 훨씬 안 좋은 성적을 받게 되었다.  당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거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보았지만 다음 모의고사가 무척 걱정이 되었다.  다음 모의고사는 다행히 원래의 성적으로 회복이
되었지만 중요한 평가원 모의고사를 망친 기억이 머리에 맴돌았다.  나를 더 두렵게 만든 것은 9월 평가원 모의고사였다. 
그 동안 갈고 닦은 내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다시 한번 6월 성적과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공포였다.  중요한 시험마다 망치는 나.  수능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어줍잖은 실력으로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았나.  교만한 마음으로 학원수업을 경시하지 않았나. 
돌아보니 어느 정도 실력이 향상된 이후로 처음 공부할 때의 간절함이 많이 사라져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다시 시작이다.  실력은 공부량과 마음가짐이다.  스트레스는 없다. 
나를 도와주실 분들은 오직 선생님. 수업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한 가지라도 더 얻자.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니 훨씬 기분이 좋아지고 학업에도 능률이 올랐다.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보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평가원 고난도 기출문제를 중점적으로 풀었다. 
초기부터 꾸준히 학원의 심리치료 수업을 이수했는데 여기서 심리적 안정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다행히 9월 이후 모의고사에서는 상승세가 더욱 커졌고 전과목에서 틀린 개수가 한 자리 수로 줄어들게 되었다. 
수능성적 1 1 1 1 2(국A 수B 영B 과탐2)
원점수 98, 96, 98, 44, 44
백분위 98, 99, 100, 97, 94

내 성적표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국영수 각 1개, 과탐에서 각2개 틀려 총 7개 –20점. 원점수 380점.  표점484점에서 532점으로.
전국 이과 0.3수준. 올해는 불수능이라 상대적으로 내 점수는 더 높아 보였다. 
배치표를 보니 그 어렵다는 서울대도, 연대도, 고대도 내 점수 아래쪽에 있었다. 
너무도 감사했다.  그 동안 나를 위해 헌신하셨던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나의 재수 선택과 기숙학원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의대생이 되다.
수능대박이라는 말이 나 자신에게 일어나니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수능을 망쳤을 때를 대비해서 접수해두었던 수시모집 서성한 논술시험에 갈 필요가 없어진 나는
부모님과 상담 끝에 정시에 의대에 지원하기로 했고 보험용으로 안정권에 넣은
영남대 의예과 가군에 1학기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었다. 
앞으로 순천향대와 한림대 발표가 남았는데 최소 2군데 합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고, 
사치스럽지만 과탐에서 하나만 더 맞았다면 인서울 의대도 충분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지금 생각해보면 6월과 9월 모평을 못 본 것이 나에게는 약이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능을 망칠까 두려워  하루도 긴장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앞으로 수능을 치를 학생들, 특히 실패를 맛 본 학생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겸손하게 공부에 전념하고 시련이 오더라도 굴복하지 말라고.  위기가 곧 기회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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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신영민 선생

등록일201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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